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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의 배신에 트럼프, 마침내 `전략비축유` 카드 꺼냈다
    2020-03-15 498 회

사우디의 배신에 트럼프, 마침내 `전략비축유` 카드 꺼냈다

트럼프, "비축유 꼭대기까지 채울 것" 자신만만
美, 멕시코만 동굴에 전세계 9일 소비분량 저장
배럴 당 30달러 붕괴 조짐에 이틀 전부터 시장개입
비축량 한계치까지 약 7000만 배럴 구매여력 존재
업계, "저유가 장기화시··언제까지 살 수 있겠나"
올해까지 `비축유 재고 털기` 법적의무도 이행해야
트럼프, 마음껏 사지도 팔지도 못하는 `외통수` 국면

  • 이재철 기자
  • 입력 : 2020.03.14 14:43:59   수정 : 2020.03.14 15:00:18
 
  • 미국 텍사스주 멕시코만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브라이언 마운드` 전략비축유 저장시설 전경.
    사진설명미국 텍사스주 멕시코만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브라이언 마운드` 전략비축유 저장시설 전경. <사진=미국 에너지부>


    "미국 전략비축유 보유고를 꼭대기까지 채우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관련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미국 석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마침내 `전략비축유` 카드를 꺼냈다.

    석유가격이 배럴 당 3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경우 자국 셰일오일 산업이 도미노 붕괴 사태를 겪을 수 있을 만큼 달러를 풀어 매일 석유시장에서 대량 구매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미 미국이 보유한 전략비축유 재고가 상당한데다 자국 법령 상 조속히 전략유를 방출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비축유 카드가 `임시방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일단 이날 전략비축유 카드를 꺼내기 하루 전인 지난 12일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폭락 사태를 막기 위해 본격적인 시장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당시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분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날 종가 대비 배럴 당 4.5%(1.48달러) 하락한 31.50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그런데 이날 장 초반에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대부분 국가를 입국금지 대상으로 정하면서 항공유 수요 절벽 가능성 때문에 WTI는 장 초반부터 5% 이상 폭락했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동결 소식(한국시간 13일 밤 9시 50분)까지 전해지자 낙폭은 8% 이상 커져 배럴 당 30달러선이 붕괴될 조짐을 보였다.

    그런데 유럽발 초대형 악재가 추가로 터졌음에도 유가는 갑자기 반등하기 시작했다. 10%대로 추락할 기세였던 시세가 6%대로 진폭을 낮추더니 최종 4.5% 하락으로 마감했다.

    당시 석유 거래시장의 이례적 움직임에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앞서 이날부터 석유시장 개입에 돌입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주부터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정부가 전략비축유와 관련해 `지정학적 시장조작`이 필요하다"는 로비를 시작했다.

    "정부가 석유시장에 개입해 매일 대량구매로 유가 붕괴를 막아달라"는 노골적 요구를 `지정학적 시장조작`이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전달한 것이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셰일 업체들이 저유가 여파로 줄도산할 경우 재선 전략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돼 이들의 요구를 묵인할 수 없는 처지였다.

    셰일 업체들이 30달러선 붕괴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수익성` 때문이다.

    셰일오일은 유정을 굴착(시추)한 뒤 원유를 회수하는 천공·파쇄·수처리(완결) 작업으로 구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 `지속가능 생산원가`가 보장돼야 한다.

    블룸버그 등은 최근 유가가 30달러 초반대까지 내려오면서 이미 지속가능 생산원가가 붕괴돼 미국 내 100여개 이상 주요 셰일 업체 중 30달러대 국면을 버틸 수 있는 기업이 엑손모빌 등 단 5곳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전략비축유` 카드가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 여부다.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중동 전쟁 등으로 석유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에 대비해 미국이 `보험`용으로 비축해놓은 대량의 석유를 뜻한다. 유가가 오를 때는 정부가 비축유를 시장에 내다팔아 재정적자를 메우는 `현금인출기` 기능도 한다.

    한국석유공사 분석과 미국 블룸버그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이 멕시코만 소금동굴 등에 저장하고 있는 전략비축유는 3월 초 현재 6억3000만배럴로 추산된다. 전 세계가 약 9일 정도 쓸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비축유를 (저장고) 꼭대기까지 채우겠다"고 언급한 최대치는 약 7억 배럴 수준이다. 3월 초 비축량을 대입했을 때 현실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구매할 수 있는 전략비축유는 7000만배럴 수준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설명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시장은 석유시장에서 배럴 당 30달러 장세가 이제 시작에 불과한 상태라며 이 최악의 가격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일 시장에서 석유를 매입해 전략비축유 탱크를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1일 발표한 `코로나19 에너지 분야 영향` 보고서에서 비단 항공업계 수요 감소 뿐 아니라 글로벌 생산·소비활동 위축 여파로 당장 유가가 반등의 모멘텀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에너지정보 서비스업체인 오일프라이스닷컴도 "세계 1위 원유 수입국인 미국은 이제서야 치명적인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돌입했다"라며 "현 글로벌 수요감소 충격은 (중간도 아닌) 이제 막 시작 단계"라고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이 같은 한계 상황을 알고 있기에 지난 9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석유 감산협상 결렬 당시 바로 전략비축유 카드를 꺼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날 협상 결렬 여파로 WTI 가격이 하루만에 24.6%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꺼낸 첫 카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어 `SOS’를 보내는 것이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간 구체적 통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셰일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우디가 적극적인 감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청을 보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런데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역으로 사우디의 하루 석유 생산량을 4월부터 현행보다 100만 배럴 더 늘리는 증산 조치를 결정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수를 꽂았다.

    빈 살만 왕세자가 대체 어떤 사정과 배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했는지에 대해 미국 매체들의 분석은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 중에서 주목이 되는 관측은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시리아 북부 미군 철수` 조치가 빈 살만 왕세자의 배신에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의 75%는 수니파인 시리아 내전에서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왔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 충돌로 확산된 시리아 내전에서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온 미군을 트럼프 대통령이 철수시키면서 지정학적 힘의 균형이 와해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결정 한 달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중요 생산시설인 아브카이크 탈황시설과 쿠라이스 유전이 공격 당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당시 예멘 후티반군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공개 발표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들의 배후에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개입돼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중동 내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외교노선이 시리아 미군 철수로 현실화하자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간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자 16조원 규모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까지 구입키로 하는 등 그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선의 호혜를 제공해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로 `힘의 공백`이 발생하자 러시아가 개입해 터키와 내전을 치르던 시리아를 지원하면서 중동 내 패권을 확대 중이다.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러시아와 석유시장 점유율 패권전쟁과 더불어 지정학적 패권 다툼이라는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전략비축유 카드가 자국 셰일산업 보호에 제한적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근거는 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양당예산법`에 따라 올해까지 상당량의 전략비축유를 시장에 방출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정확한 방출 규모를 알 수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비축유를 내다 팔아 모은 수익으로 멕시코만 일대 노후화한 비축기지의 수명을 연장하는 `비축 현대와 프로그램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미국 남부 멕시코만에 걸쳐 있는 4대 전략비축유 저장시설 위치도. 이곳에 3월 초 현재 전 세계가 9일 간 쓸 수 있는 6억3000만배럴의 석유가 저장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설명미국 남부 멕시코만에 걸쳐 있는 4대 전략비축유 저장시설 위치도. 이곳에 3월 초 현재 전 세계가 9일 간 쓸 수 있는 6억3000만배럴의 석유가 저장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사진=미국 에너지부>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유가 급락 사태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비축유 매각을 연기할 수 있다고 지난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에너지부도 이날 성명을 통해 "현재 원유시장을 고려할 때 지금이 매각에 최적의 시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꼭대기까지 채우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새 석유를 매입해 전략비축유 곳간에 마음껏 채울수도, 이를 연내에 합리적 가격에 빨리 방출해 펀드를 조성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이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