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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9 501 회

[기획- 에너지 100년 미래 100년] 석유의 역사와 미래는
기사입력 2019.04.07 10:33:33 | 최종수정 2019.04.07 10:33:33 | 김민준 기자 | minjun21@ekn.kr
 
[에너지경제신문 김민준 기자] 일반적으로 석유는 천연적으로 산출되는 불에 타기 쉬운 액체로, 이를 정제해 만들어진 제품을 모두 일컬어 ‘석유(Petroleum)’라고 한다. 화학적 구조로 보면 탄소와 수소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조합된 무수한 화합물의 혼합체다. 천연적으로 산출된 것과 이를 정제한 것으로 구별하는데, 전자를 ‘원유(Crude Oil)’라 하고, 후자를 ‘석유제품(Petroleum Products)’이라고 한다. 석유제품은 용도에 따라 액화석유가스(LPG), 납사,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윤활유, 아스팔트 등으로 분류된다.

◇ 국내 석유의 역사

석유

우리나라에 석유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80년이다. 서양문물에 눈을 뜨던 개화 초기로, 조정에서는 사절단을 미국이나 일본에 파견해 새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승려 이동인이 개화파인사들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서양문물을 구경하다가 석유와 석유램프, 성냥을 가지고 귀국하면서 이 땅에 처음으로 석유가 상륙했다. 

등유로서의 석유는 처음에는 ‘서양기름’이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중국이나 일본 상인들이 석유를 소량으로 들여왔는데, 양이 충분하지 않아 상류가정에서나 구입할 수 있었다. 한미수교 2년 뒤인 1884년부터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정식 무역이 이뤄지고,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석유를 대량 수입하면서 사정은 변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아주까리나 송진 기름 등잔은 석유 등잔으로 대체됐다. 석유가 이 땅에 들어오자 들판에서 무성하게 자라던 아주까리, 들깨 농사는 깡그리 망했다. 석유는 아주까리나 들깨기름보다도 2배나 더 오래 쓸 수 있었고 값은 훨씬 저렴했다. 편의성으로 인해 사용이 서민층으로 급속히 확대되면서 1890∼1900년대 석유는 광목류와 함께 양대 수입품목으로 자리잡았다.

1897년 미국 공사 알렌은 우리 조정으로부터 이권을 무더기로 따냈다. 이를 통해 당시 미국의 최대 석유회사이던 스탠다드 오일의 석유가 국내에 들어와 ‘솔표’라는 상표를 붙여 판매됐다. 스탠다드 오일은 인천 월미도에 석유저장소 건립허가를 받아냈고, 그 해 말에 조선 최초의 석유저장탱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월미도엔 ‘남산만한 서양 기름통’과 ‘서양 기름선’을 구경하기 위해 인파가 밀려들었다고 한다.

1930년대에 일본이 대륙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일본은 1934년에 산업물자의 통제와 함께 석유도 6개월분을 미리 보유·비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석유업령’을 공포했다. 대륙침략의 발판기지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한 일본은 1935년 조선석유를 세우고 연산 30만톤(하루 약 6000배럴) 규모의 원산정유공장을 건설했다. 1938년 원산공장이 완공된 후 조선석유는 미국에서 전용 유조선으로 원유를 운송해다가 정제했다.

해방 후 미군은 국내 모든 석유제품의 수입과 배급을 맡았고, 조선석유도 미군정의 관리를 받게 됐다. 이어 1949년 모든 석유류의 저장과 판매 업무를 주관하는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rea Oil Storage Co·KOSCO)가 설립됐다.


◇ 석유산업의 발전
동해가스전

국내 정유산업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정부는 석유에너지의 안정공급 없이는 경제개발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정유공장 건설을 최우선사업으로 채택했다. 1964년 4월 일산 3만5000 배럴 규모의 국내 최초 정유공장이 울산에서 가동을 시작했다. 정유공장이 가동되면서 산업생산은 물론 국민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1960년 초만 해도 주종 에너지원이 석탄이었다. 그러나 경제개발을 위한 산업의 동력원으로서 석유 소비가 급증함에 따라 1962년에 9.8%에 불과했던 석유 소비는 1971년에 50.6%를 차지해 국내 에너지 소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게 됐다. 1978년 최고 63.3%까지 이르렀던 석유소비 비중은 차츰 낮아져 2007년 기준 43%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여전히 주종 에너지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 정유 4사의 탄생
GS칼텍스

△ SK에너지= 우리 정부는 1962년 ‘대한석유공사법’을 제정, 같은 해 10월 대한석유공사를 설립했다. 대한석유공사는 미국 걸프사와 1963년 12월 울산에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우리 정부는 정유시설 확장과 석유화학사업 진출을 위한 투자자금을 걸프사로부터 유치하고 1970년 경영권을 걸프사로 넘겼다. 하지만 1·2차 석유위기로 원유공급능력 악화 등 상황이 불리해지자 걸프사는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우리 정부에 인도하고 1980년 8월 한국에서 전면 철수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한석유공사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주식회사 선경을 대상자로 선정했다. 선경은 1982년 대한석유공사의 사명을 ‘유공’으로 바꾸고 1997년에 국제화에 발맞추어 SK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어 2007년 SK에너지로 이름을 바꿨고, 2008년 자회사인 SK인천정유(1969년 설립된 경인에너지가 전신)와 합병을 완료했다.

△ GS칼텍스= GS칼텍스의 전신은 ‘럭키’다. 정부가 1966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제2정유공장 건설의 실수요자를 공모한 끝에 선정돼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호남정유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69년에 여수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그후 확장을 거듭해 1996년 사명을 LG칼텍스정유 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2005년 LG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GS칼텍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 에쓰오일= 쌍용그룹은 석유파동으로 인해 쌍용양회의 B-C유 공급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자 이란국영석유공사(NIOC)와 50대 50의 합작정유공장 건설계약에 합의, 1976년 한이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온산에 정유공장을 건설했다. 그러나 정유공장 완공 전 이란 회교혁명으로 원유공급계약이 파기되자 이란 측 소유주식을 전량 인수하고 1980년에 사명을 쌍용정유주식회사로 변경했다. 1991년 사우디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와의 지분참여 계약을 체결하고 중질유 크래킹 센터를 건립했다. 이후 1999년 쌍용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해 2000년 사명을 현재의 에쓰오일로 바꿨다.

△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의 전신인 ‘극동석유공업’은 고급윤활유를 주로 공급해온 회사로서 세계적인 메이저인 로열더치셸과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1969년 상호를 극동쉘석유로 변경했다. 1977년 극동석유주식회사로 상호 변경하고, 쉘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합작계약이 해지되자 쉘의 지분 50%를 새로운 동반자인 현대가 매입했다. 1988년에 상호를 다시 극동정유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1989년에 대산 등지에 정유공장을 준공했다. 하지만 공장 준공 후 심각한 재정난으로 1993년 현대그룹이 극동정유를 인수하게 됨으로써 현대정유주식회사가 탄생했고 2002년 현대정유에서 현대오일뱅크로 사명을 변경했다.


◇ 석유의 미래
석유 매장량

지나간 20세기는 ‘석유의 시대’였다. 인류는 석유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덕분에 지난 한 세기 동안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60년 동안 인구가 2배로 늘어났고, 평균수명도 80세에 다가서고 있다. 1960년에 79달러에 불과하던 1인당 국민소득이 이제는 2만 달러를 넘어섰고, 이제 우리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에 육박하고 있다. 우리의 에너지 소비도 놀라운 수준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우리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2배에 이르러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1970년대 초부터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한 정유산업이 튼튼한 기반이 돼 주었다. 우리 국토에서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았지만 우리 정유산업의 규모는 세계 6위에 이르렀다.

그러나 석유는 이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원유는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는 자연 자원이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기술 개발로 고갈의 시기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화석연료의 과도한 활용이 환경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는 사실도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석유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는 원인이 된다. 1997년에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막아보려는 국제적 노력의 결과였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1988년부터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를 구성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석유가 인류의 환경을 파괴한 주범일까. 만약 인류가 석유화학섬유를 지니지 못했다면 우리의 의복은 면, 마, 명주, 양모와 같은 천연섬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이를 재배하기 위해 토양은 파괴됐을 것이다. 또 짐승의 털과 가죽에만 의존하는 겨울철 의복, 신발들을 고집했다면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부족한 동식물자원의 쟁탈을 위한 국가간의 전쟁도 수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과거 명주, 삼베 옷감에서 발전한 나일론 합성섬유는 편리함과 제작의 용이성을 가져다 준 것이다. 우리의 생활에 이제는 흔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화학섬유로 된 스타킹을 처음 대하고 신기해 하던 것이 불과 수십년 전의 일이다.

거의 모든 의복에 사용되는 지퍼를 보면 과거에는 알루미늄이나 놋쇠로 가공한 금속제지퍼로 세탁과정에서 변형됐다. 그러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라는 아세탈 수지, 폴리부틸렌 프탈레이트 같은 것이 사용되면서 지퍼는 이러한 단점을 없앴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금속제를 대체하는 신소재로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자동차 기계장치에도 사용된다. 실제로 자동차에는 플라스틱이 상당히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사용은 과거에 힘들게 주물해서 성형하는 공정을 대체했다. 또 금속용 재료에서의 문제점인 녹이 스는 것, 마찰 마모에 의한 소음, 가공때 폐수 발생 등이 감소돼 우리의 환경은 오히려 덜 오염됐다.

매일 매일 대하는 식탁에서도 석유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석유(화학비료)로 재배한 채소, 석유연료로 요리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에서 주위를 둘러봐도 모든 것이 석유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매일 접속하는 인터넷의 PC제품, 즐겨보는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 가구, 자동차, 스포츠용품, 완구, 주방용품, 사무용품, 합성세제, 화장품, 의약품, 인공장기 등 너무도 많다. 20세기에 들어서서 획기적으로 발전한 석유화학 산업은 누구나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우리의 산이 울창한 숲으로 변하게 되고 자연환경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자연 생태계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는 물질을 인공합성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한 석유의 무한한 변신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 개발은 그럼 가능할까?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은 5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에 인류가 새로 찾아낸 연료는 석탄이었다. 석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였으며 이는 불과 300년 전이다. 원유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부터였고, 천연가스는 20세기 중엽부터 안전한 활용이 가능했다. 새로운 연료나 에너지원을 찾아내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이 기술적으로 그만큼 어려운 과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해서 실용화하기까지 우리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지역별 석유수요 장기전망    (단위: 백만 b/d)
구분 2017 2025 2030 2035 2040 증감 연평균
증가율
IEA OECD 41.3 40.0 37.9 35.7 34.3 -7 -0.8%
비OECD 41.9 49.0 52.3 54.5 56.4 14.5 1.3%
유라시아 3.7 4.1 4.2 4.2 4.2 0.5 0.5%
벙커유 8.0 9.2 9.9 10.6 11.4 3.4 1.6%
바이오 1.8 2.8 3.4 4.0 4.7 2.9 4.1%
96.6 105.2 107.7 108.9 111.0 14.4 0.6%
OPEC OECD 47.3 46.8 44.2 41.5 38.7 -8.6 -0.8%
비OECD 44.4 53.1 58.1 62.6 66.6 22.2 1.7%
유라시아 5.4 6.1 6.3 6.4 6.4 1 0.7%
바이오 2.2 2.7 3.0 3.3 3.6 1.4 2.1%
97.2 106.0 108.6 110.5 111.7 14.5 0.6%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내놓은 전망보고서를 보면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의 급부상에도 석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석유는 2040년까지 주종에너지원 지위를 유지한다. IEA는 세계경제성장률 평균 3.4%를 유지하고, 에너지수요 증가율이 1.0%를 전제할 때 2040년 석유수요가 2017년보다 하루 평균 1440만 배럴 증가한 1억1100만 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0.6%씩 증가하는 것이다. OPEC 역시 2040년 석유수요가 2017년보다 하루 1450만 배럴 증가한 1억12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지역별로 비(非)OECD 국가의 석유수요가 2040년까지 연평균 1.3∼1.7% 증가하면서 석유 수요를 견인하는 것으로 내다봤다. IEA는 2040년까지 하루평균 1450만 배럴 증가하고, OPEC은 하루평균 2220만 배럴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했다. 인구증가, 중산층 확대, 경제 고성장 등을 석유수요 주요 증가요인으로 꼽았다. 구체적으로 2020년대 전반부까지는 중국, 이후에는 인도가 석유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이 기간 중동의 석유수요 증가세가 유럽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OECD 국가들의 석유수요는 같은 기간 연평균 0.8%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