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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3 542 회

마침내 베일 벗은 사우디 '최강 병기' 아람코 제국

조선일보
  • 정시행 기자
  • 입력 2019.04.03 03:01
  • 지난해 영업이익 254조원… 애플·삼성전자·알파벳 합친 것보다 많아
    매출은 사우디 GDP의 70%… 세금·배당금으로 정부 재정 87% 충당

    베일에 싸여 있던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기업 아람코(Aramco)의 경영 실적이 공개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1일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아람코는 작년 영업이익 2240억 달러(254조원), 순익 1111억달러(126조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지금까지 세계 1위 기업이었던 애플(818억달러)과 삼성전자(776억 달러), 알파벳(구글 모기업·404억달러)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압도적인 세계 1위였다. 유럽 최대 석유업체 로열더치셸(533억달러)과 미 엑손모빌(404억달러)의 영업 이익을 합쳐도 아람코의 절반도 안 된다. 미 언론들은 "돈을 찍어내는 수준의 미친 이익"(비즈니스 인사이더)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수익"(월스트리트저널)이라고 표현했다.

    2018년 세계 주요 기업 영업이익 외
     
    아람코 성적표가 '충격'인 것은 이 회사의 회계장부가 공개된 것 자체가 유례없기 때문이다. 아람코는 사우디 왕실이 지분을 100% 소유한 비(非)상장회사로,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이며 어떻게 운영되는지 80여년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번에 사우디 국내 석유화학업체 사빅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추진하면서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공증을 처음 받은 것이다.

    최근 아람코 국내외 증시 상장(IPO·기업공개)이 추진되면서 업계에선 아람코 시가총액을 최소 1조5000억달러에서 2조달러, 심지어 3조달러까지 추정했다. 최근 세계 '1조달러 클럽'에 처음 입성한 애플·아마존 같은 미 대표 기업을 가뿐히 제친다는 것이다.

    아람코는 20세기 이후 세계 경제사의 흐름을 압축해 보여주는 기업이다. 중동 무슬림의 메카(무함마드 탄생지) 성지순례 말곤 수출거리가 없던 사우디에서 1938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당시 기술과 자본을 가진 미국이 참여해 공동 설립했다. 아람코는 '아라비아 아메리칸 석유회사(Arabian American Oil Company)'의 약칭이다. 생산 단가가 저렴한 사우디 원유는 1·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 붐의 원천이 됐다. 그러나 서방 석유 메이저 기업들에 의해 유가가 좌우되자 '검은 황금' 석유 패권에 눈뜬 사우디 왕실은 1980년까지 미국 측이 갖고 있던 지분을 전량 회수해 100% 지분 확보에 성공했다. 이후 '사우디 아람코'로 사명을 바꿔 철저한 비밀 경영에 들어갔다.

    각국 언론이 전하는 아람코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가디언·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아람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은 1360만 배럴로 전 세계 생산량의 12%를 차지하고, 세계 최대 정유사인 미 엑손모빌(380만 배럴)의 3배가 넘는다. 직원은 7만여 명으로 미국·영국 인력을 포함한 다국적군이다. 아람코를 일부 취재한 포천·이코노미스트는 "미 교외 주택단지를 연상시키는 내부 주거시설엔 미 존스홉킨스대 병원 분원과 경기 스타디움 11개, 골프장에 야생동물 보호구역까지 들어서 있다"고 보도했다. 아람코는 또 상류층과 성적 우수생을 국비 장학생처럼 뽑아 스탠퍼드·MIT 등에 유학을 보내고, 미국 등의 정계·싱크탱크·대학·언론에도 오일머니를 투하해 로비를 해왔다. 사우디라는 국가의 '최강 병기(兵器)'가 아람코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석유 시장의 판도가 바뀌면서 아람코의 입지도 불안해졌다. 미 셰일오일 생산 등에 따른 저(低)유가 지속,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 고조에 따라 중동의 석유 패권이 예전 같지 않다. 실제 석유가가 배럴당 30달러로 폭락한 2016년 당시 아람코 연 매출은 3분의 1토막(1350억달러) 났고, 사우디 경제성장률은 0%대로 폭락했다. 사우디의 '아람코 의존 경제'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이 6838억달러였는데, 아람코 매출이 GDP의 70% 수준인 4655억달러였다. 정부 재정 87%를 아람코가 내는 배당금과 세금으로 충당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사우디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은 2016년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석기 시대는 곧 끝난다"며 "2018년까지 아람코를 해외 증시에 상장하고 석유 의존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겠다"고 발표했다. 아람코 지분 중 5%를 팔아 인공지능(AI)·전기차·태양광·관광산업 등 신산업에 분산 투자하고, 아람코 내 여성 임직원 비중도 늘려 국제 기준에 맞추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람코 상 장은 지난해 돌연 2021년으로 연기됐다. 지난해 빈살만 왕세자 주도의 반정부 언론인 살해 사건이나 예멘 내전 개입 등이 국제 논란을 낳으면서 "왕실에 귀속돼 정치 리스크가 큰 기업에 투자하기 꺼려진다"는 우려가 퍼진 탓이다. 영 가디언은 "사우디 내부에서 아람코 기업 공개 시 왕실의 호화로운 씀씀이가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컸다"고 전했다.